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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일반극) 구슬의 비밀

작성자
인형극단 친구들
조회
372
구슬의 비밀

극본 이한영

 

때 : 요즘

곳 : 거실과 놀이터

나오는 사람들 : 경민, 엄마. 할머니. 아빠. 노인, 사냥꾼, 아이1, 아이2, 개

 

1

막이 열리면 경민이가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. 엄마가 들어오다가 혼자 놀고있는 경민이를 보고 가까이 간다.

 

엄마 : (부드럽게) 경민아, 왜 혼자서 놀고 있니? 나가서 친구들하고 놀아야지.

경민 : 싫어요. 모두 공 차고 놀던데요, 뭐.

엄마 : 그럼, 너도 같이 차면 되잖니?

경민 : 전 못 해요. 모두 공을 얼마나 잘 차는데…….

엄마 : (달래듯이)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어. 자꾸 차면 너도 잘 차게 된단다.

경민 : (고개를 흔들며) 아무래도 전 잘 안 돼요.

엄마 : 쯧쯧! 얘가 왜 이런 다지? (그러다가 탁자 위의 꽃병을 보고) 꽃병의 물이나 좀 갈아 주고 놀아라.

경민 : (주저주저하며) 지난번처럼 또 깨면…….

엄마 : (타이르듯이) 그런 것도 못하면 바보가 되는 거야. 자, 어서 해 보렴.

 

경민이가 할 수 없이 다가가 꽃병을 들어 올리다가, 갑자기 무엇에 놀란 듯이 비명을 지르며 꽃병을 내려놓고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린다.

 

경민 : 으악!

엄마 : (경민이를 감싸 안으며) 경 경민아. 왜 그러니, 응?

경민 : 저 저기, 바 바퀴벌레……. (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리킨다.)

엄마 : (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) 뭐? 바퀴벌레라고? 아니, 경민아. 3학년이나 된 녀석이 그 까짓 바퀴벌레에 그렇게 놀라니?

경민 : 바퀴벌레를 보면 막 소름이 끼치는 걸요.

엄마 : 내 참, 기가 막혀서.

 

엄마가 휴지를 빼어 바퀴벌레를 잡아 치우고, 꽃병도 탁자 위에 바로 놓는다. 걸레로 탁자 위의 물을 훔치는 엄마의 모습을 경민이가 우두커니 바라본다. 어느새 할머니도 나와 있다.

 

경민 : (할머니에게 매달리며) 할머니!

할머니 : (경민이를 감싸안으며) 원, 녀석! 벌레가 그렇게 무섭더냐?

엄마 : (경민이를 흘겨보며)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!

할머니 : 너무 그러지 마라, 어미야. 다 때가 되면 제 스스로 깨닫게 될 게다.

 

이 때 아빠가 무슨 일인가 하고 걸어나오자, 경민이는 할머니 품에서 빠져나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.

 

아빠 : (할머니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) 어머니, 왜 그러세요? 무슨 일이요, 여보?

할머니 : 글쎄, 어미가 경민이 때문에 걱정하는구나.

아빠 : 경민이가 왜요? 경민이가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나요?

엄마 : 여보! 정말 경민일 어떻게 좀 해 보세요. 사내녀석이 저렇게 나약해서야 무엇에 쓰겠 어요?

아빠 : 어떻게 했기에 또…?

 

엄마와 할머니가 뭐라고 열심히 아빠에게 이야기하고, 아빠는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고 있다.

 

아빠 : 음…!

엄마 : 여보, 어쩌면 좋죠?

할머니 : 아비야, 무슨 좋은 수가 없겠냐? 내가 아까 말은 그렇게 했다만, 정말 좀 걱정되는 구나.

아빠 : 경민이는 지금 어디 있소?

엄마 : 또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겠죠, 뭐.

아빠 : (잠시 생각에 잠기다가) 옳지! 그렇게 한번 해 봐야겠군.

엄마 : (궁금한 듯) 네?

아빠 : 걱정말고 내게 맡겨요.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으니까.

 

아빠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자, 그 모습을 엄마와 할머니가 궁금한 듯 바라본다.

 

할머니 : 아비가 뭘 하겠다는 거지?

엄마 : (고개를 갸웃하며) 글쎄요. 도무지 무슨 말인지…….

 

2

무대가 잠시 암전 되었다가 밝아지면 놀이터 마당이다. 경민이가 혼자서 땅바닥에 막대기로 이리저리 끼적거리고 있다가 일어서서 힘없이 한 두 발짝 앞으로 걸어나온다.

 

경민 : (혼잣말로) 나는 왜 이럴까?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지? 정말 나도 잘 하고 싶은 데, 막상 무엇을 하려고 하면 자신이 없어. 아! 어쩌면 좋지?

 

경민이가 실의에 빠져서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저 쪽에서 이상한 차림을 한 노인 한 분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. 허연 머리와 긴 수염, 허름한 양복에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또 한 손에는 누런 가죽가방 하나가 들려져 있다.

 

노인 : (경민이에게 다가오며) 얘야, 뭘 그리 중얼거리고 있니?

경민 : (멈칫 놀라며) 아, 할아버지는 누구세요?

노인 : 놀랄 것 없단다. 그리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.

경민 : (경계의 빛을 띄며) 누군…데 그러세요?

노인 : 사람들은 나를 백수노인이라 부르지.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온갖 세상사를 구경하는 게 내 취미란다.

경민 : (노인의 차림새를 훑어보며) 그런데요?.

노인 : (히죽 웃으며) 보아하니 걱정이 있는 게로군.

경민 : 어떻게 그걸…?

노인 : 세상을 오래 살면, 무슨 일인지 척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지. 넌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군. 그게 걱정이지? 그렇지?

경민 : (놀란 눈으로 노인을 빤히 쳐다보며) 대체 할아버진 누구세요?

노인 : 허허! 아까도 이야기 했잖니. 백수노인이라고…….

경민 : (궁금하다는 듯이) 뭘 하시는 분인데요?

노인 : 세상의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다니는 게 내 일이지.

경민 : (더욱 놀라며) 네에? 용기와 자신감을 요?

노인 : 그래, 그렇단다.

경민 : (노인의 팔을 잡고) 할아버지, 그렇다면 제게 좀 알려 주세요. 어떻게 하면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?

노인 : (경민이를 빤히 바라보며) 네가 진정 용기 있는 아이가 되고 싶니?

경민 : (고개를 끄덕이며) 네!

노인 : 음…, 그렇다면 우선 내 이야기를 들어 보렴. (노인이 이야기를 시작한다.) 옛날에 말 이다, 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돌아다니다가 저쪽 숲 속에 시커먼 산돼지 한 마리 를 발견했단다.

 

노인이 경민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, 한 사냥꾼이 활을 메고 등장하더니 이리저리 숲 속을 살핀다. 경민이와 노인은 무대 한편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.

 

사냥꾼 : (산돼지를 발견하고) 옳지! 드디어 큰놈을 한 마리 발견했군. 내 솜씨를 보여 주마. 나는 이 세상 제일가는 사냥꾼이니까 말이야.

 

사냥꾼은 서슴없이 등에 메고 있던 화살 통에서 화살 한 대를 빼어 그 산돼지를 향해 힘껏 쏜다. 그리고 화살은 그 산돼지의 심장 깊숙이 박힌다.

 

사냥꾼 : 핫핫핫핫! 역시 내 활 솜씨는 천하 제일이거든.

 

사냥꾼은 화살이 박혀있는 산돼지에게로 다가가다가 깜짝 놀라며 멈칫 선다. 화살이 깊이 박혀있는 물체는 산돼지가 아니라 시커먼 바위였던 것이다.

 

사냥꾼 : (놀라며) 이럴 수가! 어떻게 바위에 화살이 박힐 수가 있지?

 

사냥꾼이 바위에 박혀있는 화살을 힘껏 뽑아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.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냥꾼은 화살 한 대를 빼어들고 아까 산돼지를 쏘던 자리로 돌아와 바위를 향해 다시 활을 쏜다. 그러나 화살은 바위에 맞아 튕겨나오고 만다. 사냥꾼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활을 쐈지만 모두 튕겨나오자, 흩어진 화살들을 주워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라진다.

 

경민 : 화살이 바위에 꽂히다니, 믿을 수 없어요. 어떻게 화살이 바위에 꽂혔을까요?

노인 : 그건, 바위가 아니라 산돼지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지.

경민 : 그러면 다음에 쏜 화살은 요?

노인 : 산돼지가 아니라 바위를 쏜다고 생각한 때부터 이미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생겨났지. 그러니까 안 꽂힌 거지.

경민 : …그랬었군요.

노인 : 무슨 일이나 ‘할 수 있다’는 자신감이 그만큼 중요한 거란다.

경민 : 그렇지만 그게 잘 되나요, 뭐.

 

그 말에 노인이 가방을 열더니 구슬 한 개를 끄집어내어 경민이 손에 쥐어준다.

 

경민 : 웬 구슬이에요?

노인 : 이게 보통구슬처럼 보여도 특별한 구슬이란다. 자신감을 심어주는 구슬이지.

경민 : 이 구슬이 자신감을…? 어떻게요?

노인 : 그러니까 신비의 구슬이지. 이 구슬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,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구슬을 만지면서 마음속으로 세 번을 되뇌어라.‘나는 할 수 있다, 나는 할 수 있다, 나는 할 수 있다.’하고 말이야.

경민 : 그러면 잘 할 수 있게 되나요?

노인 :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되지.

경민 : (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) 설마…?

노인 : 믿지 못하겠거든 한번 시험해 보렴.

경민 : (구슬을 매만지며) 정말, 시험해 봐도 돼요?

노인 : 그럼!

경민 : 그러면 잠시 여기 기다리세요. 그동안 영 자신이 없어서 한번도 넘지 못했던 늑목을 한번 넘어보고 올게요.

노인 : 그러려므나.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.

경민 : 네.

 

경민이가 달려간 쪽을 노인이 목을 빼고 바라보고 있다. 이윽고 한참 후 경민이가 숨을 헐떡이며 기쁨에 찬 얼굴로 나타난다.

 

경민 : (감격에 찬 목소리로) 할아버지! 해 냈어요. 제가 해냈다구요. 단번에 늑목을 넘었다 구요.

노인 : (함께 기뻐하며) 오! 그래? 그것 봐라. 내 말이 거짓이 아니지?

 

마침 이 때 놀이터 한편으로 두 아이가 등장하더니,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윽박지르며 때리기 시작한다. 그것을 본 경민이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더니, 구슬을 서너 번 매만지고는 성큼성큼 그 아이들에게로 다가간다.

 

경민 : (약간 떨리는 목소리로) 얘! 너, 왜…그러니?

아이 : (움찔 놀라며) 넌 뭐야?

경민 : (고개를 돌려 노인을 한번 쳐다보고는) 나? 난 경민이야. 무,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말로 해. 때리는 건 나쁜 짓이야.

 

아이가 잠시 씩씩거리더니 휑하니 나가버리자, 그 뒤로 다른 아이도 따라나간다. 경민이가 주먹 쥔 팔을 들어 보이며 노인에게로 돌아온다.

 

노인 : (경민이를 보고) 어떠냐? 신기하지?

경민 : (기쁨에 들뜬 목소리로) 네!

노인 : 그렇다고 구슬만 믿고 너무 날뛰면 안 된단다.

 

이 때 작은 개 한 마리가 두 사람 가까이로 걸어오자, 경민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에 쥔 구슬을 매만지며 소리친다.

 

경민 : (자신 있는 목소리로) 이제 개 따윈 무섭지 않아. 그동안 네놈들이 나를 무던히도 겁 나게 했지. 에잇! (개를 발로 걷어찬다.)

 

갑자기 배를 걷어 채인 개가 두어 번 깨갱거리더니,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경민이에게 달려든다.

 

경민 : (질겁하며) 엄마야! (노인의 등뒤로 숨는다.)

 

노인이 웃으며 지팡이로 개를 쫓자 개는 달아나고, 그제야 경민이가 등뒤에서 나온다.

 

노인 : 그것 봐라. 그런 짓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는 거다. 그런 일에는 구슬도 소용이 없지.

경민 : 만용이라구요?

노인 : 방금 너처럼 앞뒤 못 가리고 마구 날뛰는 용맹을 만용이라고 하지. 진정으로 자신감 과 용기가 필요할 때만 그 구슬의 신비한 힘이 작용하게 된단다.

경민 : …네!

노인 : (일어서며) 자, 그럼 난 가 봐야겠다.

경민 : 어디로 가시게요?

노인 : 또 너 같은 아이를 찾아서 어딘 가로 가 봐야지.

 

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나가다가 돌아서더니, 경민이에게 한마디 더 한다.

 

노인 : 명심해라. 꼭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할 때에만 그 구슬을 쓴다는 것 말이다.

경민 : 네! 할아버지, 명심할게요.

 

노인이 경민이를 보고 씽긋 한번 웃더니,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나간다. 그 뒷모습을 경민이가 꼼짝 않고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.

 

서서히 막이 닫힌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