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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일반극) 흥부가 기가 막혀

작성자
인형극단 친구들
조회
856
흥부가 기가 막혀

극본 이한영


때 : 겨울

곳 : 놀부네 마당

나오는 사람들 : 흥부, 놀부, 마당쇠, 흥부아내, 놀부아내







막이 열리면 마당쇠가 마당을 쓸고 있다.


놀부 : (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며 고함을 지른다.) 이놈, 흥부야! 흥부야-!

마당쇠 : 아이고, 영감마님. 뭔 고함을 교양 없이 그렇게나 크게 지른다요잉. 간 떨어지게 시리.

놀부 : 내 교양 없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. 그래, 마당쇠야. 흥부 이 놈 어디 있느냐? 오늘은 꼭 과수원 감나무 가지치기를 끝마치라고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 했거늘, 또 어디 가서 대 낮부터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 모양이로구나. 내 이놈을 오늘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. 이 놈을 당장, 당장 쫓아내어야지.


이 때 흥부, 술이 곤드레가 되어 술병을 들고 들어온다.


흥부 : 비내리는 호남선∼ 남행열차에∼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∼ 커-, 취한다. 이렇게 좋은 날에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라고? 흥! 내가, 이 흥부가! 그래 그까짓 가지치기나 하고 있 을 것 같애? (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들이마시고는) 카-, 술맛 좋다. 나는 말이지, 술이 좋고 빈둥빈둥 노는 것이 좋다 이거야.

놀부 : (흥부 노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가) 잘 논다, 잘 놀아. 흥부 네 이놈!

흥부 : (약간 놀라며) 아이구 깜짝이야! 형님 나오셨는기라우?

놀부 : 그래, 나왔다. 뭐가 어쩌고 어째? 술이 좋고 노는 것이 좋아? 이놈아, 누구는 술 마실 줄 모르고 놀 줄 몰라서 안 노는 줄 아느냐? 네놈같이 게을러 빠져서야 이어려운 세상에 무 슨 일을 해 먹고 살아가겠느냐? 말 좀 해 봐라 이놈아!

흥부 : (능청스럽게) 형님요,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시는교. 아, 일이라는 건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, 내일 못하면 또 모레 하면 되는 것 아닌교. 쇠털같이 많은 날에 도대체 바쁠 게 뭐 있겠는교?

놀부 : (주먹으로 가슴을 치며) 아이구 속터져! 아이구 속터져! 이놈 말하는 것 좀 보게. 터진 입 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. 이런 사정도 모르고 세상 사람들은 그저 저놈 흥부만 착하다 고 하고 내 이 놀부는 천하에 못된 놈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래 이렇게 원통할 데가 어 디 있겠소, 여러분? (관중을 보고 하소연한다.)

마당쇠: (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한 발 나서며) 흥부 서방님! 어서 영감마님께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는 대낮부터 술 안 마시겠다고 하시요잉! 내가 봐도 참말로 너무 하구만.

흥부 : (마당쇠에게 삿대질을 하며) 떽! 마당쇠 네 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노! (다시 놀부를 향하 여) 보이소, 형님요. 너무 구박하지 마시요잉! 내가 지금은 이리 형편이 어려워도 제비 다 리 하나만 딱 고쳐 주었다 하면, 제비가 박씨를 딱 물고 와서 그걸 심었다 하면, 그냥 박 이 주렁주렁 주렁주렁-

놀부 : (담뱃대로 흥부의 머리를 치며) 에라이- 이 쓸개빠진 녀석 같으니라고. 열심히 일해서 잘 살 생각은 안하고 허황된 공짜나 바라는 이 한심한 놈! 그 동안 그래도 형제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웬만하면 같이 살려고 했는데 이제 더는 못 참겠다. 당장 나가거라! 어서! (호 통을 친다.)

흥부 : (깜짝 놀라며) 아이구, 형님! 나가라니요. 설마 농담이시겠죠? 제가 집이 있습니 껴, 돈이 있습니껴, 형님 집이 바로 내 집인데 나가기는 어디로 나가겠습니껴? 함부래 그런 말씀 아예 하지도 마시시요잉!

놀부 : 듣기 싫다! 이놈아! 네가 어디로 가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. 어서 냉큼 나가 거라.

흥부 : (사정하듯) 형님.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으라 했는데 참말로 너무 합니다요. 형님과 저 는 피를 나눈 형제 아닌교. 형제간에 어쩌면 이렇게도 매정할 수가 있단 말입니껴?

놀부 : 그래, 말 잘했다. 이놈아, 너도 양심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봐라. 아버님이 남긴 유산, 네 나 내나 똑같이 나누어 가지고선, 되지도 않는 사업한답시고 거들먹거리다가 1년도 안돼 재산 다 날리고 들어와서는 빈둥거리며 지낸 지가 어언 3년이 넘었지 않았느냐? 그 런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밤낮없이 술이나 퍼마시며 허황된 망상이나 하고 있으니, 그 러고도 네놈이 할 말이 있어? 말해 봐라 이놈아!

흥부 : (풀죽은 목소리로) 그야 뭐, 사업을 하다 보면 망하는 수도 있는기고...(그러다가 불만스럽 게) 형님이 그때 논 서마지기만 더 팔아서 보태주시기만 했더라도 부도가 안 날 수도 있 었는기라요.

놀부 : (기가 막히다는 듯이) 오냐, 이놈아. 더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플 뿐이다. 여러 말 하 지 말고 냉큼 나가기나 해라.


그 때 흥부 아내 달려나온다.


흥부아내: 아이고 아주버님. 참말로 너무 하시는구만요잉. 본래 이 이가 좀 게으르고 술을 좋아해 서 그렇지,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멋쟁이당깨요. 제발 나가라는 말씀은 하지 마시 시요잉!

놀부 : (흥부아내를 흘겨보며) 제수씨도 그래요. 남편이란 자가 허황되고 게을러서 빈둥거리면 아 내라도 알뜰히 집에서 살림을 살아야 될 텐데, 날마다 무슨 동창회다 계모임이다 해가며 싸돌아다니고 돈은 생기는 대로 펑펑 다 써버리니 어떻게 가난을 면하겠소? 나는 이제 일 은 안하고 허구 헌 날 술이나 퍼마시며 노는 꼴 더 이상 못 보겠소! 나가서 실컷 같이 춤 추고 노래부르며 재미있게 한번 살아보슈! (홱 돌아선다.)


그러자 안쪽에서 놀부아내 걸어나온다.


놀부아내: 여보 영감! 참으세요 좀. 이렇게 매서운 추위에 그 많은 아이들 데리고 어디로 가라고 자꾸 나가라고 하시는 거요. 고정하세요 영감!

놀부 : (버럭 화를 내며) 할멈은 감싸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. 내 오늘은 기어이 결판을 내고 말겠 소. 네 이놈 흥부야! 무얼 하고 있느냐. 당장, 냉큼 나가지 못할까?

놀부아내: (사정하듯) 영감! 왜 이러시는 거요, 여태까지 잘 참으시고선. (그러다가 단호하게) 내 쫓더라도 아이들은 안돼요.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추위에 거리로 내 몬단 말이요.

안돼요, 아이들은. 절대로!

놀부 : (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) 아이들은 두고 너희 내외만 나가거라. 어서!

흥부 : (놀부 발아래 엎드리며 다리를 잡고 울먹인다.) 형님! 제발…….

놀부 : (발로 밀치며) 어서 나가거라 이놈아!


흥부,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. 그리고는 힘없이 일어난다.


흥부 : (기가 막힌 듯) 아이고 형님! 그 말씀 참말이당가요?

(처량하게 노래를 부른다. 노래/육각수)

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-

아이고 형님, 동생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요, 이 엄동 설한에.

어느 곳으로 가면 산단 말이요, 갈 곳이나 일러주오.

지리산으로 가오리까, 묘향산으로 가오리까, 백이 숙제 주려 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-

놀부 : 아따, 이놈아. 내가 네 갈 곳까지 일러주랴! 잔소리 말고 썩 꺼져 뿌려라잉!

흥부 : (노래 계속된다.) 해지는 겨울 들녘 스며드는 바람에, 초라한 내 몸 하나 둘 곳 어데요. 어 디로∼ 아∼ 이제 난 어디로 가나. 이제 떠나가는 지금∼ 어디로∼

(흥부, 흐느끼듯 노래를 부르며 아내와 함께 걸어 나간다.)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, 흥부가 기가 막혀∼

으흐흐흑-


놀부아내,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마당쇠는 멍청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.


놀부 : (손을 휙 내저으며) 잘 가거라잉-


막이 닫힌다.